Post by 윤태용

태광사 시계연구소 CEO

오는 8월, 화천에 기본소득이 풀린다. 매월 34억원 연간으로 계산하면 408억원이다. 직접 영향을 받는 화천의 소상공인 사업체 수가 1천개 남짓하니, 산술적으로 계산해서 사업체당 연간 4천만원에 달한다. 그렇다고 주민들이 기존에 쓰던 돈을 그대로 쓰면서 추가로 15만원씩 더 쓰지는 않는다. 다들 사용기한이 있는 이돈을 먼저 사용하고 필요시 추가로 더 쓰는 형태가 될 거다. 지난번 전국에 뿌려진 재난지원금에 대한 ‘한계소비성향’에 조사가 있었다. 재난지원금으로 100만원의 추가 수입이 발생하면, 쓰던 돈에서 100만원 더 쓰는게 아니라 약 40만원 정도의 더 쓴다는 거다. 이 데이터를 화천군에 대입하면 지금보다 매년 163억원이 추가로 풀린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상권의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돈이 들어오니 신난다"며 축제 분위기에만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예상해보자. 기본소득으로 매출이 오른 치킨집 사장님, 카페 사장님은 다시 닭고기와 원두를 사기 위해 대도시에 본사에 돈을 입금한다. 장사해서 주머니로 들어온 돈이, 단 한두 번의 거래 만에 대도시로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것. ‘지역 자금 역외 유출'이다. 그럼 얼마가? 70~80%가. 다시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연간 408억원이 지역에 지역화폐로 풀리면, 지역의 추가 소비는 168억원이 늘고, 그 중 134억원은 대도시로 즉시 빠져나간다. 화천에 남는 돈은 33억원 남짓. 이게 현실이다. 결국 화천이 발전하려면 대도시로 즉시 빠져나가는 134억원 중 일부를 못나가게 설계해야 한다. 그게 핵심이다. 그렇다고 단기간에 산업 기반이 전무한 화천에서 하부구조를 만들수도 없다. 하지만 영국의 쇠락한 공업도시 '프레스턴(Preston)'은 구체적인 시스템 개혁으로 이 한계를 돌파했다. 이들은 지역있는 기관들이 매년 외부로 지출하던 막대한 예산을 지역 내에 쓰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계약 쪼개기'를 단행했다. 수백억 원 단위의 대형 식자재 납품 계약을 '유제품', '채소', '육류' 등으로 잘게 쪼갰다. 대형 업체만 참여할 수 있었던 입찰의 문턱을 낮춰, 지역 소상공인들이 직접 입찰을 따낼 수 있게 제도를 바꾼 것이다. 그래도 안되면, 물건이 지역에 아예 없다면 직접 공급망을 만들었다. 시민들이 빵을 굽고, IT 서비스를 제공하고, 청소를 담당하는 '노동자 협동조합'을 설립하도록 자금과 컨설팅을 지원했다. 그리고 기관들이 이들의 물품을 우선 구매해 판로를 보장해 주었다. 그 결과, 4년 만에 1,2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이 밖으로 새지 않고 도시는 활력을 되찾았다. 화천 역시 이들이 외부에서 사들이던 식자재와 소모품을 지역 내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줘야 한다. 군부대나 학교가 지역 소상공인 수십 명과 일일이 계약하는 행정적 번거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화천군은 공공 플랫폼(먹거리 통합지원센터 등)을 구축하고, 군부대와 학교는 이 플랫폼 한 곳과 대형 계약을 맺고, 플랫폼이 지역 농가와 소상공인으로부터 물품을 매입하고 검수와 배송을 대행하는 방식이다. 화천은 '접경지역 지원 특별법'이라는 든든한 무기가 있다. 이 조항을 근거로, 군부대와 강력한 상생 협약을 맺고 지역 조달의 명분을 쥐여주어야 한다. 좀 더 나간다면 자영업자가 외부 대신 지역 공급망을 이용할 때 발생하는 가격 차액을 보전해 주는 '로컬 구매 지원 기금'을 설계하는 것도 좋다. 8월부터 들어오게 될 기본소득은 평생 화천을 먹여 살려줄 생명줄이 아니다. 내년 12월까지 딱 17개월만 운영되는 시범사업이다. 이 돈이 일회성 소비로 증발하게 두어선 안 된다. 큰 그림을 그릴때다. 결국 이 마중물을 토대로 사업경쟁력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