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by 구성원

Macro trader, Meritz Securities

첫 책 『모두가 주식할 때 나는 채권에 투자한다』를 출간한 뒤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정말 주식을 안 하시나요?"라는 걱정 어린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비밀)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다음 주제는 무엇인가요?"였습니다. *** 채권의 다음 이야기를 진지하게 요청하는 출판사 관계자 분도 계셨고, 트레이더들의 실제 의사결정에 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시장보다 사람에게 더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채권시장은 코로나 이후 인플레이션, 급격한 금리 인상, AI가 이끈 주식 강세까지 역사적인 변곡점을 연이어 지나왔습니다. 같은 시장을 겪었지만 조직마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달랐습니다. 같은 정보, 같은 시스템, 비슷한 실력을 가진 딜러들이었지만, 어떤 조직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어떤 조직은 같은 위기 속에서 무너졌습니다. 채권은 금리로 움직이지만, 조직은 사람으로 움직이기 때문이겠죠. *** 트레이딩룸은 다른 조직보다 더 냉혹합니다.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고, 손익은 매일 숫자로 기록됩니다. 불확실한 시장과 싸워야 하는 이곳에서는 결국 사람의 판단과 조직문화가 경쟁력이 됩니다. 리더가 어떤 문화를 만들었는지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최근 몸담게 된 조직의 뛰어난 동료들과 식사를 하다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역사를 좋아했고, 가장 좋아하는 역사 속 인물에 대한 간단한 질문이 각 인물에 대한 평가와 맞물리며 예상보다 길고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화두가 저의 관심사를 시장에서 사람으로 옮기게 된 계기였습니다. *** 트레이딩룸의 흥망성쇠를 떠올리다 보니 역사책에서 본 사례들이 떠오릅니다. 국사무쌍(國士無雙)이라 불린 한신(韓信)은 항우(項羽)의 진영에서는 발언권조차 없는 하급 장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소하(蕭何)의 안목과 유방(劉邦)의 신뢰는 그를 대장군으로 만들었습니다. 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棧道 暗渡陳倉), 배수진(背水陣), 십면매복(十面埋伏)​의 고사를 남기며 해하(垓下)에서 항우를 잡아낸 그는, 유방의 신뢰에 천하통일로 보답했습니다. 철원수(鐵元帥, Iron Marshal) 루이 니콜라 다부(Louis-Nicolas Davout)는 나폴레옹 휘하의 뛰어난 원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에게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아 군단의 전권에 가까운 작전 권한을 위임받았습니다. 독립적으로 군단을 지휘한 그는 아우어슈테트(Auerstädt)에서 약 2만 7천의 병력으로 두 배가 넘는 프로이센 주력을 격파하며, 나폴레옹의 신뢰를 불패(不敗)의 기록으로 화답한 유일한 원수가 되었습니다. 양병위(兩兵衛)중 1인인 구로다 간베에(黑田官兵衛)는 다카마쓰성 수공전(高松城水攻め) 및 야마자키 전투부터 규슈 평정까지, 히데요시를 혼노지의 변 이후 혼란속에서 천하인으로 만들어준 전국시대 최고의 전략가입니다. 히데요시의 모든 주요 전략에는 그의 손길이 닿아 있었지만, 그의 재능은 훗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셋으로 나눌 수 있는 사내"​라고 평했을 만큼 뛰어났기에 히데요시는 그의 비범한 재능을 끝내 경계했습니다. 최고의 전략가를 곁에 두고도 끝까지 품지 못한 도요토미 정권은 결국 세키가하라를 거쳐 오사카 여름의 진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 역사는 영웅의 기록이기에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을 알아보고, 사람을 쓰고, 사람을 믿었던 리더들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우리의 현실에서도 끝 없이 반복되는 듯 합니다. 운용의 명가라고 불리던 하우스가 일이년만에 몰락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던 중소형 하우스가 뛰어난 리더의 지휘 하에 몇년 만에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도 합니다. 트레이딩룸은 잘하라고 몰아친다고 성과가 잘 나오는 곳이 아니기에, 더더욱 역사 이야기들이 와닿습니다. 요즘은 이런 질문들을 조금씩 기록하고 있습니다. - 리더는 어떻게 조직문화를 만드는가 - 조직 문화는 어떻게 사람의 판단을 바꾸는가 - 조직문화의 차이가 어떻게 조직의 흥망과 성과로 이어지는가 현생도 녹록치 않기에 당장은 무언가를 써내려갈 자신은 없지만, 많은 분들이 보내주신 DM과 메시지, 그리고 "다음에는 무엇을 쓰실 건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제 답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