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by 박범수
대표 / Founder & CEO @ Innerin · Building UNINAV — AI Career Discovery Platform
[인너인 노트 #8] 뭐?! 취업보장과 취업률 1위로 대학을 홍보해? 취업 보장, 취업률 1위. 요즘 대학이 자신을 파는 문구다. 대학 제도의 개혁가 훔볼트가 이를 봤다면 통탄할 일이다. 이 행태를 조금 더 직관적으로 바라보자. 어떤 식당이 홍보한다. 자기 음식에 담긴 영양분이 취업에 도움을 준다고. 우리는 그 식당에 가고 싶은가? 그리고 그 식당에 가야 하는가? 제대로 된 손님이라면 영양 성분표가 아니라 맛으로 승부하는 식당, 맛없으면 전액 환불을 내거는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현 대학의 상황이 이러하다. 자신의 연구 시스템과 그 실적을 내세우기보다, 취업률과 장학금으로 학생을 끌어모은다. 건강한 사회라면 이런 마케팅이 먹혀선 안 된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이를 바라고, 더 바란다.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는 지금과 정반대로 대학을 설계했다. 그가 개혁에 나선 1800년 무렵, 독일 대학은 성직자·관료·의사 자격증을 찍어내는 양성소에 가까웠다. 옆나라 프랑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혁명이 옛 대학을 쓸어버린 자리에, 나폴레옹은 국가가 관리하는 새 교육체계를 세운다. 핵심은 교육과 연구를 갈라놓는 것이었다. 쓸모 있는 전문 엘리트는 그랑제콜에서 실무로 길러내고, 진리를 캐는 연구는 대학 바깥으로 밀어냈다. 이처럼 유럽의 두 나라는 쓸모를 기준으로 대학을 운영하였다. 철저히 쓸모를 기준으로 짠 대학 시스템. 우리에게 기시감을 주는, 익숙한 논리다. 이러한 대학 논리에 반기를 든 사람이 둘 있다. 먼저 칸트다. 1798년 『학부들의 다툼(Der Streit der Fakultäten)』에서 그는 대학을 둘로 갈랐다. 정부에 쓸모가 있어 '상위'라 불린 신학·법학·의학부, 쓸모와 무관해 '하위'라 불린 철학부. 칸트는 이 둘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상위학부는 정부의 인가를 받고 검열에 묶이지만, 철학부는 오직 이성과 진리에만 답한다고. 그리고 이 구도에서 두 학부의 역할이 정해진다. 상위학부는 특정 목적에 봉사하고 철학부는 그러한 상위학부를 비판한다. 이때 비판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철학부만큼은 절대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칸트가 보기엔 철학부는 쓸모없어 보이는 학부가 아닌 바로 대학의 양심이었던 것이다. 12년 뒤 훔볼트는 칸트의 통찰을 제도로 옮겼다. 그가 내세운 것은 빌둥(Bildung)이다. 누군가의 쓸모로 자신을 깎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형성해 나가는 일. 그리고 그 빌둥을 떠받친 기둥이 학문적 자유였다. 교수가 무엇을 연구하고 가르칠지 정하는 자유(Lehrfreiheit), 학생이 무엇을 어떤 순서로 배울지 선택하는 자유(Lernfreiheit). 칸트가 철학부에 부여한 자유를, 훔볼트는 대학 전체의 원리로 넓혔다. 지금 우리가 고등학생에게 권하는 진로설계는 이 200년의 방향을 거꾸로 되감는다. 학과를 고르는 첫 질문은 "희망 직업이 뭔데?", "그래서 그거 취업에 도움이 되냐?"다. 말하자면 칸트의 상위학부, 쓸모 있는 학부만 남기고 하위학부를 지우는 일이다. 계약학과는 입학과 동시에 배울 것과 일할 곳이 정해진다. 학생이 무엇을 배울지 선택할 자유, 그 Lernfreiheit를 입학 전에 반납하는 구조다. 대학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대학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다만 한 가지는 짚고 싶다. 그렇게 취업이 목적이라면, 차라리 대학이라는 형식을 벗고 전문 직업양성소를 만드는 편이 정직하다. 거기엔 비싼 교수도 없고, 실제 기업 관계자가 나와 OJT를 직접 맡는다. 학생은 인턴 자격으로 돈을 받으며 배우고, 4년이라는 세월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굳이 '대학'이라는 간판 아래 계약학과라는 형태를 끌고 가는가. 그 비효율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는가. 답하기 전에, 훔볼트를 떠올리자.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답은 명확할 것이다. 인생선배로서 우리가 학생에게 건네는 '진로'라는 단어. 그 안에 스스로 형성할 기획, 즉 자유가 아직 남아 있는가. #진로교육 #대학교육 #훔볼트 #칸트 #교육철학